[인터뷰] 대한민국 문학 역사를 바로 잡은 김우종 교수

참여 문학을 널리 알려 우리 문학의 이정표를 세우고, 친일 문학을 청산하여 문학 역사를 바로잡다.

장용희 | 기사입력 2021/06/21 [23:47]

[인터뷰] 대한민국 문학 역사를 바로 잡은 김우종 교수

참여 문학을 널리 알려 우리 문학의 이정표를 세우고, 친일 문학을 청산하여 문학 역사를 바로잡다.

장용희 | 입력 : 2021/06/21 [23:47]

  

  © 장용희 - 김우종 교수 

 

[강건문화뉴스 = 장용희 기자] 김우종 교수는 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다. 1950년대부터 발발한 6.25전쟁, 민주화운동 등을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었기 때문에 김 교수의 인터뷰 내용은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남을 것이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입학 당시 서울대학교는 안정된 질서를 확립하였습니다. 입학 이전 상황은 11개의 단과대학이 모이면서 종합대학 신설을 반대하는 열풍이 불어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안정된 교내에서 공부를 하는 꿈도 접어야 했습니다. 바로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필수로 가야 했기에 대학교 졸업이 늦어졌습니다. 재학 당시 유명한 동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수필가 김열규 등이 있었지만 함께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박완서는 전쟁으로 흩어진 후 복학도 못했고요. 저는 대학교 재학 당시 평론가로 등단하였으며 졸업한 뒤에는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고 이후 충남대학교, 경희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였습니다."

 

"유신 독재체제가 발발하던 당시에는 반대 운동이 일어났었는데, 갑자기 강의 도중 체포가 되었습니다. 일명,‘문인간첩단’이라는 날조된 이름으로 붙잡아가서 강제로 투옥시켰습니다. 학교에서도 해고되어, 교수 활동도 멈춰야 했습니다. 다행히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지만, 44년이나 지난 뒤에야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경희대 교직생활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이후 1980년에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거의 매일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서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졌습니다."

 

  © 장용희 - 김우종 교수 

 

"대학교를 정년퇴직한 뒤 한국 대학신문사에 들어갔습니다. 현재는 문예지 '창작산맥' 발행인이 되어 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문인들을 위해 등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창작산맥 문예지는 계간지이며, 1년에 4권이 발간됩니다. 문예지를 창간하게 된 계기는 국가의 헌법과 나라의 국시 한도 범위 내에서 글을 써야 하는 문인들의 창의력과 창작력을 길러주고 올바른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세운 문예지입니다.‘창작산맥’의 설립 취지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모두의 사랑을 주제로 하며,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사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문인 중에는 친일의 유산을 떠받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친일의 잔재는 빠르게 청산해야합니다. 우리는 조국을 생각하며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 윤동주의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여 친일파 잔재를 없애고 떳떳한 문학 활동을 하여서 후손들에게도 칭송을 받을 수 있는 문학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 장용희 - 창작산맥 올해 봄호 창작산맥 계간지 표지(좌측), 작년 겨울호 창작산맥 계간지 표지(우측)


"올해 봄호의‘창작산맥’의 계간지의 표지는 뒤뜰에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촛불을 켜고 빌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작년 겨울호에는, 후쿠오카 감옥 위로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나비가 날아다니며 한 여성이 당당한 자세로 울부짖는 모습이 그려져있습니다. 친일청산이 끝나지 않음을 개탄하는 메시지입니다. 올해 6월, 발간할 예정인 ‘창작산맥’의 여름호 표지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소재로 한 그림이 나옵니다. 이 그림은 100호 너비의 커다란 그림인데,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 많은 나비들이 얼어버린 DMZ 비무장지대를 향해 날아가고 있으며, 남과 북이 함께 만나는 것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나비가 상견례를 합니다. 창작산맥은 이런 식으로 매년 새로운 개혁정신과 평화통일에 목적을 두고 문예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입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김우종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사랑과 평화적인 마음을 글로 풀어낸 작가들을 위해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장르는‘평론’이다. 김 교수가 지필한 평론 작품들은 모든 문학인들이 읽으며 공감을 하고 배우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된다. 김 교수를 따르며 칭송하는 작가들이 많은 이유는 김 교수의 정확하고 뛰어난 문체의 비평 실력 및 평화적 사상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모든 문학인들이 가슴속에 새기고 꽃피워야할 마음속 정원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글을 깊이 있게 읽고, 예리한 분석으로 올바른 독해력을 지닌다면 좋은 평론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내면의 사상을 꿰뚫어보아야 하는 것도 평론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평론가는 보석 같은 작품을 찾아서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에 김 교수는 "평론은 지식인의 고차원적 언어유희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언어로는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예술 세계" 라고 답하였다. 비평과 평론은 같은 단어인데, 대한민국의 평론가, 비평가들이 많아져 세상에 유익한 문학들을 많이 제공하여 성찰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 문학 세계에 사람들이 뛰어들면서 문학의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앞으로도 많은 평론가들이 김 교수의 훌륭한 비평문학을 읽고 공부하여 좋은 평론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1960년대의 우리 문학사를 들여다보면, 순수와 참여 논쟁을 많이 거론합니다. 순수 참여 논쟁은‘순수문학'과 ‘참여문학'사이의 논쟁을 말합니다. 우리가 현재 문학이라고 부름은 사회참여문학 분야로 기울어진 현상을 보입니다. 한 마디로 문학의 역사의 흐름이 바뀐 강줄기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현실을 외면하고 그것만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순수문학이며 정반대로, 현실에 발 붙이고 사회에 기여해야 된다는 것이 참여문학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운 문학을 만들려면 순수문학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글을 지양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적 문제와 상황 등을 살펴서 문학으로 풀어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진정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 교수는‘참여문학’을 한국문학사에서 최초로 이론적 체계를 세워가며 주창하였다. 1950년 말에는 독제체제에 굴복한 국민들이 많이 있었기에 이러한 현실을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을 대조하는 강연으로 널리 알리었고, 1963년 동아일보 기고작으로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논쟁에 불을 붙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도록 한 촛불이 되어주었다. 비록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사회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기쁘고 보람된다고 말하는 김 교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문예지 표지를 그리며 노력하고 실천하는 김 교수의 올바른 사상으로 힘든 역경을 이겨내면서 걸어온 역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문학인들이 깊이 있게 통찰하고 마음속에 새겨두어서 존경해야 할 위인이심이 분명하다. 

 

  © 장용희 - 창작산맥 행사 당시 문우분들과 함께한 김우종 교수의 모습

 

인터뷰를 하면서‘창작산맥’이라는 문학단체명의 뜻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문학의 창작과 이를 이어가는 정신, 즉 그런 사상들이 펼쳐진 산맥을 우리 문단과 문인들이 함께 걸어나가야 하며, 산 정상에 다다랐을 때, 좋은 마을들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대한민국 문학인들의 삶을 담은 아름다운 창조정신의 참여문학세계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윤동주의 길을 걸어가는 조국의 순열 열사들의 정신을 본받아 평화적이며 행복한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문학인들이 평화를 연구하고 문학으로 풀어 나가야 하는 숙제임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였다. 윤동주의 시문학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하는 점은 시에 담겨진 문장들이다.

 

 

서 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장용희 - 윤동주 '서시'

 

 

“우리 민족의 징병, 징용,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고 독립운동(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구락부 사건)으로 체포 되어 복역 중에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삶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추모제를 개최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에는 형무소가 있습니다. 지금은 후쿠오카 저서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가 생체실험을 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갔고, 동아일보에서 ‘숟가락’이라는 콩트로 등단한 송몽규 작가도 함께 죽었습니다. 형무소 담 밖에는 모모지 니시공원이 있는데 여기서 추모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행사에는 일본 유지들도 참가하였으며, 한국의 총영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윤동주 시를 낭송하고, 故 서울대학교 이애주 교수가 진혼무와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로 윤동주의 넋을 위로하였습니다. 풍물놀이 패였던 가수 장사익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이애주 교수는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사에서 앞장섰던 무용가였기에 의미가 깊었습니다. 예전에 몸을 담았던 한국대학신문에서 거금의 행사비용을 대주고 행사주최가 되었는데 이 행사는 일본 공영방송사 NHK 에서 심도있게 취재되었으며, 일본의 여러 언론매체들이 기사들을 써내려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전역에 윤동주 추모 행사가 널리 퍼져갔습니다. 일본 국민들도 윤동주의 평화를 위한 희생과 문학 사상을 존중하고 따르게 된 것이였습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많이 있지만, 김우종 교수는 이를 실천한 문학가이다. 그의 바른 역사의식과 참여문학 사상으로 윤동주를 널리 알렸다. 우리 모두 김 교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올바른 역사를 전승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때 아픈 역사까지 문학으로 풀게 되는 세상이 다신 오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추모제에서의 일화를 통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증언은 계속되었다. 

 

“행사 단상에 올라가서 일본의 니시오카겐지 교수가 첫 마디로,‘우리가 윤동주를 죽였습니다!’라고 외치며 참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며 과거의 일은 잊지 말고 기억하며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우정을 맺어나가자고 했어요.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하는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의 잘못을 일본 교수가 사과한 셈입니다. 그 교수는 후쿠오카 현립대 교수로서 그곳에 윤동주시비를 세우려고 건립추진위원회를 오래도록 운영했습니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세워진 시비는 제가 꼭 세우려고 애썼지만 당시 대학이 불가능하다고만 말하더니 1994년 말에 대학당국이 스스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 일본 교토에 우리나라 고등학생 수백명이 수학여행을 갑니다. 우리의 올바른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제대로 된 역사의식으로 참회한 일본 교수를 통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열심히 산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목표가 올바른 사회의 체계를 위해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김 교수의 참여문학가의 삶을 본받아 많은 국민들의 올바른 사상을 마음 속에 담는다면 창작산맥의 맥은 지속될 것이다.

 

“저는 우리나라 국정 국어교과서에 친일문학인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과감히 빼버렸습니다. 국정교과서 심의 중, 교육개발원이 제가 단독심의하도록 맡겼기에 성사된 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서정주 팬들이 나를 많이 미워하고 있는 듯 합니다. 1990년대가 시작될 때부터 친일의 잔재를 제거한 국정 국어교과서가 나와 정말 다행이였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숨 쉬고 살아가며 자랑스러운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이를 말살하려던 일본의 탄압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재를 무찌르고, 민주화 운동을 하며 평화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만든 나라이다. 바로 김우종 교수님처럼 말이다.

 

인터뷰의 마지막으로 문학의 매력을 여쭤보았다.

“문학은 예술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술 문화단체 총연합회에 한국문인협회가 있는데, 모든 예술작품 중 언어예술인 문학은 여러 예술 중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언어에 의한 논리적 사고로 깊이 있는 사상과 철학을 담은 장르입니다. 문학은 철학적 논리와 사상을 담아 세상에 배포됩니다. 그래서 큰일을 해야 하는 것도 문학인의 사명입니다. 사회적 존재로써 자존심을 가지고 자부심을 지켜내야 합니다. 사후 70년 뒤 문학인들이 쓴 작품의 저작권은 소멸됩니다. 미술작품은 몇백 년이 흘러도 값어치가 뛰지만, 문학인들은 모든 작품을 세상에 다 내어놓고 가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댓가 없이 나눠주는 사람,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사람, 새로운 방향을 정하여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참된 문학인들은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주옥 같은 말들을 전해주시는 김 교수의 철학은 깊이 마음 속에 큰 울림을 남겨주었다. 김 교수님의 책들을 더 알고 싶어 여쭤보았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순수문학비판'이라는 평론집이 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황입니다. 그 다음에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유신체제반대운동으로 서대문감옥에 들어가서 고생하며 힘들게 써내려간 책이였습니다. 가끔씩 학생들이 옥살이 중 매를 맞고 처참히 돌아온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였기에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썼습니다. 그 당시 긴급조치 4호 위반에 걸렸지만 다시 투옥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후 '김우종 평론집'을 만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이 책을 들고 문화공보부로 심의를 받으러 갔는데 그곳 직원이 출판사 사장을 향해 책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하게 윤동주의 정신을 기리며 참여문학인으로써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 날이 별로 안 남았지만, 지금 해오고 있는 글과 그림을 묶어서 책을 내려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인이지만 화가로서도 오래도록 활동했기에 이를 묶어서 새로운 책을 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정전 상태 속의 평화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남과 북이 대립하기도 하지만 결코 전쟁은 재발하지 말아야겠다. 2019년 한국은행 보고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내총생산은 1조 6,463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1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민총소득은 1조 6,606억 3천만 달러로 세계11위로 선진국 계열로 들어선지 오래이다.

 

우리나라처럼 급성장하여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을 일깨워주며 민주 사회 운동에 힘을 보태주는 문학이 있어서였다. 언론사와 문학계에서 친일 역사를 청산하고 공헌한 김우종 교수의 노력과 올바른 세상을 위해 참여문학을 주창하며 문학산맥을 만든 김 교수의 노력은 널리 칭송하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창작산맥의 산 정상에 올라가서 가지각색의 다양한 생각을 가진 문학인들을 바라보고 잘못된 점은 비평가가 되어 이야기해주며, 잘한 점은 평론으로 칭찬을 하는 올바른 문학 사회를 만들어가야하는 시점이 아닐까.

김우종 교수의 인터뷰로 깊은 울림을 받는 작가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부족한 인터뷰임에도 깊은 문학 사상을 전해주신 김우종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장용희 기자 forestgirlide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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