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정병태 선임기자의 부자 마인드/인문학 채널 13

백태현 | 기사입력 2020/06/24 [16:12]

철학박사, 정병태 선임기자의 부자 마인드/인문학 채널 13

백태현 | 입력 : 2020/06/24 [16:12]

 

太公曰

기다림美學

 

 

▲ 강태공(姜太公)  © 백태현

 

긴 기다림으로

용을 낚은 태공망(太公望)

 

 

인내, 천천히, 기다림 그리고 담금질이 끝나면 역사의 꽃이 핀다.

그래서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는 말이 있듯이 기다림은 곧 미학(美學)이 된다.

유대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큰 죄가 있는데 그것은 조급함이다. 사실 기다림을 잃어버린 나는, 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기다림이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위대한 영긂의 미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그래서 나는 영어그릿grit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이는 실패한 뒤에도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끈기’‘투지’‘기개정도로 해석한다.

나는 중국 주()나라의 현자 강태공(姜太公, 태공망太公望)의 왈()을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 기약 없는 기다림 앞에서 끝까지 버티어 용을 낚은 강태공을 기다림의 대가로 소개하곤 한다. 그는 중국 주나라를 세우는데 1등 공신이기도하다. 강태공은 중국 동해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으나 언제나 책을 가까이하여 주경야독을 했다.

당시 강태공이 살고 있던 은나라는 폭군 주왕이 요부 달기에게 빠져 천하가 어지러웠다.

 

사색의 대가 강태공(姜太公)은 긴 세월을 낚시만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긴 시간을 보냈을까? 중국 춘추시기 강태공이 위수(渭水)가에 앉아 낚시 줄을 드리우니 고기 잡는 줄로만 착각하고 주()나라 문왕이 다가서며 "물고기 잘 물립니까?"라는 물음에 "난 한 마리 고기가 아니라 천하를 낚아 올리고 있소이다." 대답했다고 한다.그는 이 위수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왕에 의해 기용되었다.

 

강태공(B.C 1211-1072)139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내가 공부한 철학자 중 가장 오랫동안 장수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익히 잘 알고 있는 고사성어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었다. 이는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을 의미한다. 강태공의 부인은 마씨(馬氏)였다. 그의 부인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훗날 제나라의 제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이 다시 찾아와 부인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하자, 강태공은 바가지의 물을 바닥에 부은 후 다시 담으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혹은 한 번 어긋난 인간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래 이름은 강상(姜尙)이다. 그의 선조가 여()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으로도 불렸다. 흔히들 태공망이라 불렸다. 당시 그가 살고 있던 은나라는 폭군 주왕이 있었다. 여상(강태공)은 천하를 놀라게 할 만한 경륜을 갖고 있었으나 은나라에 등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문왕과 무왕의 재상이 되어 주()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만들었다. 강태공은 문왕의 아들 무왕을 도와 은나라의 폭군 주()를 토벌하고, 그 공로로 제()나라의 왕으로 봉해졌다. 저서로는 고대 병서인 <육도삼략>을 펴냈다. 강태공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저술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육도삼략>은 훗날 제환공을 패자로 만드는 관중과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창업하는 장량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책략의 대가 강태공

 

강태공이 무왕을 도와 폭군 주왕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민심을 헤아릴 줄 아는 책략가였기 때문이다.

 

太公曰.

눈과 귀는 아름다운 소리나 모습을 즐기려 하고, 입은 여러 고기 등의 좋은 맛을 보고 싶어 한다. 또한 몸은 편하고 안락한 것을 원하고, 마음은 권세와 재능으로 얻은 영화로움을 자랑하려 하니, 백성들이 이러한 풍속에 젖어든 지 이미 오래되었다. 때문에 오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마다 들려주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가 없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다하여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때문에 물가가 싼 것은 장차 비싸질 징조이며, 물가가 비싼 것은 싸질 징조이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일에 힘을 쓰고 즐기면, 이것은 마치 물이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부르지 않아도 자연히 모여들고,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물품을 만들어낸다. 이 어찌 도()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움의 증명이 아니겠는가?

 

빈부의 이치란 누가 빼앗거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재능이 있는 자는 부를 얻고 재능이 없는 자는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부유해져야 덕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노닐 듯이, 사람도 부유해야 유명해진다. 공자도 제자 자공이 경제적으로 부자였기에 공자가 유명해질 수 있었다.

 

강태공은 뛰어난 능력과 높은 학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시기가 지금이 아님을 알고 벼슬에도 돈벌이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강가에서 낚시를 드리우며 세월을 보냈다. 한마디로 최고의 때를 기다렸다. 그렇다보니 부인 마씨와 가난하게 살았다. 특별한 벌이가 없는 여상은 살림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위수에서 낚시질을 하거나 책만 읽었다. 모진 고생을 하던 마씨는 마침내 여상 곁을 떠났다. 그러나 여상은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낚시를 하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일어났고 그것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병법서 <육도삼략>을 집필했다. 이는 여상이 낚시를 하면서 얼마나 깊은 사색을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강태공은 낚시를 즐긴 것이 아니라 치도와 병법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였다. 할릴 없이 낚시나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여상의 낚싯대를 건져보았다. 그러자 강태공의 낚싯대에는 미끼조차 없었다. 그렇게 70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배움의 가치

 

3000년 전 태공(太公) (). “인생불학 여명명야행(人生不學 如冥冥夜行)라고 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여기서 어두운 밤()에 어두울 명(冥冥매우 어두움)을 반복해서 두 번 넣었다는 것은 정말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의미한다.

사람은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서는 우매함을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미있고 올바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열심히 배움에 정진해야 한다. 나는 알았다. 배움의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배워야 한다.

요즘은 남녀 구별 없이 배워야 세상을 읽고 사물의 이치를 알려면 배우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배우지 아니하면 감도 떨어지고 우둔해진다. 그래서 늦었지만 나는, 한문을 배우고 중국어와 영어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는 일에 열의를 갖고 전한다. 배우지 않으면 우둔하고 어리석고 추악해진다.

 

 

太公曰 男子失敎 長必頑愚

남자실교 장필완우

 

女子失敎 長必麤疎

여자실교 장필추소

 

태공이 말하기를 남자가 배우지 못하면 자라서 반드시 둔하고 어리석을 것이고, 여자가 배우지 못하면 자라서 반드시 추악하고 치밀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평성대 요순시대(堯舜時代)

 

 

太公曰. 현명한 지도자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는, 눈은 밝아야 하고, , 귀는 총명해야 하며, 다음으로 마음은 지혜로워야 한다. 고로 지혜가 보통 사람과 같으면 국사(國師 제왕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가 아니다. 그리고 장수가 지혜롭지 못하면 군대 전체가 의심한다.

 

▲ 중국의 고대국가는 하-은-주의 시대  © GCN 백태현 기자


 

중국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史記)>황제 헌원(黃帝 軒轅)을 중국 역사의 시조로 삼았다. 그 뒤를 전욱 고양, 제곡 고신, , 이다. 이 다섯 임금을 오제(五帝)라 칭한다. 흔히 요순시대(堯舜時代)를 태평성대라고 말한다. 그 이후 중국의 고대국가는 -()-주의 시대로 이어진다.

 

하나라의 시대는 17439을 이어왔다(BC 2070~BC 1601). 시조 우는 성인으로 숭앙되었으나 마지막 천자인 걸()은 전례 없는 폭군이었다. 다음으로, 성탕이 천자가 되어 새 시대를 여니 곧 은왕조 시대이다.

 

은왕조는 30645년간지속되었다(BC 1600~BC 1047). 기원전 1600년경 탕()이 은왕조를 창건했다. 기원전 1300년경 반경(盤庚)이 은허(殷墟)로 수도를 옮겼다. 주로 이때부터를 은나라로 부른다. 이전에는 탕이 상족(商族) 출신이기 때문에 상()나라라고 했다. 탕에서 주() 임금까지 30대에 걸쳐 480여 년 동안 존속했다. 갑골문자와 달력이 발달했으며, 청동기에 새긴 금문(金文)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주나라(BC 1046~BC 771)는 농사의 신으로 불리는 후직의 후손 무왕(武王)이 호경(鎬京, 지금의 서안 부근)에서 창건했다. 주 왕실은 친족이나 개국 공신을 제후로 임명하고 주변의 땅을 다스리게 했다. 중국 최초로 봉건제도를 실시한 것이다. 이 시기에 철기와 죽간, 목책을 사용했다. 폭군 려왕(礪王)이 백성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수도를 비우자 일시적으로 소공(召公)과 주공(周公)이 이끄는 공화(共和) 정치가 있었다. 기원전 771년 평왕(平王)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피해 낙읍(洛邑, 낙양)으로 천도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전을 서주(西周),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한다. 동주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를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라고 한다. 이 기간에도 주나라는 명분상 존속한다. 주역(周易)이 주나라 때 생겼는데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이다.

 

   

서백 희창이 강태공을 기용

 

은나라의 주왕의 폭정이 절정에 이르러 주나라의 제후서백 희창(문왕)은 자신의 장남을 삶아 끓인 국을 넙죽 받아먹는다. 그리고는 일체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강태공은 어떤 상황에 누구의 재상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은왕조의 마지막 왕은 누구였으며, 고대 중국의 역사 흐름을 이해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왕조의 마지막 ()()은 광기어린 폭군이었다. 여인들과 놀이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가득한 연못과 고기로 된 숲)을 만들었다. 인간 막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 예로 신하들을 죽여 포를 떠서 소금에 절였고, 노인은 뼈가 시리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강가를 서성이는 한 노인을 붙잡아 다리를 잘라 뼈를 확인하기도 한다. 주왕의 폭군의 모습을 본 신하 중 서백(西伯) 희창(姬昌)은 주왕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곳의 백성들에게 ()을 실천했고 나날이 ()을 쌓았다. 그는 무왕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이 소문을 들은 주왕은 곧바로 희창을 감옥에 가둔다. 폭군 주왕은 서백 희창의 장남 백읍고(伯邑考)를 산채로 커다란 솥에 집에 넣고 삶아 죽였다. 그렇게 끓인 고깃국을 희창에게 먹이게 한다. 결국 은나라는 폭군 주왕으로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 양기성, <태공조위도>, 《만고기관첩》,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29.4cm, 일본 야마토분카칸  © GCN 백태현 기자


강태공의 꿈에 주나라를 크게 일으킬 성인이 찾아올 것을 예견하였다. 그를 몹시 기다렸다. 훗날 문왕이 된 희창 역시 뛰어난 책사가 필요했다. 희창의 꿈에도 천제가 나타나 말했다.

창아, 너를 도울 만한 지혜롭고 훌륭한 스승을 보내 줄 터인데, 그의 이름은 태공망(太公望)이라. 눈썹과 수염이 눈처럼 희고, 눈에는 안광이 그윽하게 빛난다.”

강태공은 하늘이 주신 스승이었다.

과연 위수에 곧은 낚시를 하는 선풍도골의 한 노인이 있었다. 희창은 여상과 사흘 밤낮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상은 천리에 통달하고 문리를 깨우치고 있었다. 희창은 마침내 털썩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희창은 훗날 문왕에 봉해지는 데 여상은 태공망이라고 불렸다. 태공망은 문왕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스승이라는 뜻이다.

 

▲ 강태공의 별명‘백가종사(百家宗師)’ (그의 사상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활약했음)  © GCN 백태현 기자

 

▲ 주나라 문왕(서백 희창)기원전 1152-1056년그는 태공망 강상(姜尙)을 등용한다.  © GCN 백태현 기자

 


강태공은 문왕의 스승이 되자 작은 제후국에 지나지 않던 주나라를 부국강병하게 만들었다. 그는 오로지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데만 힘썼다. 한 예로 백성들에게 세금을 적게 걷고 농사를 짓는 법을 가르쳤다.

희창이 죽고 무왕이 즉위했다. 무왕도 강태공을 스승으로 불렀다.

무왕은 강태공을 군사로 임명한 뒤에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폭군 주왕을 몰아내기로 했다. 주왕의 군사는 70만이나 되었으나 강태공은 용사 100명을 거느리고 주왕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강태공이 거느린 군사들은 불과 100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강태공의 군사들은 정신력이 강했다. 마침내 은나라는 멸망했다.

강태공이 남긴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저술한 <육도삼략>은 훗날 제환공을 패자로 만드는 관중과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창업하는 장량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색의 낚시질

 

 

공자가 성인이라고 추앙하던 주나라 문왕이 직접 찾아가 세 번 절을 하고 모셔갈 정도로 인품과 학식이 뛰어났다. 강태공은 무엇보다도 시대를 앞서간 가르침을 주었다. 강태공은 점술이 만연하던 시대에 오히려 하늘에 운명을 맡기기보다는 국가의 올바른 경영을 통해얻어지는 백성들의 윤택이 하늘의 뜻보다 더 국가의 흥망성쇠에 중요함을 실천했다.

 

문왕 희창은 천제가 알려준 태공망을 찾고자 위수 북쪽의 산과 들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꿈속에서 보았던 성인은 없었다. 이번에는 강가를 살피다가 갈대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한 노인이 낚시를 하고 있는 데, 그가 바로 강태공(太公望)이었다. 실은 70이 넘도록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닦으며 때를 기다려왔다. 그는 때를 기다리며 낚시 바늘이 없는 낚시 대로 낚시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왕은 가는 신음을 토하며 하늘에 감사를 올렸다. 꿈에 천제가 소개해 준 스승이 틀림이 없었다. 태공망 강상(姜尙)을 즉시 등용하였다.

 

 

강태공과 문왕 희창이 처음 만나 나눈 대화이다. 먼저 희창이 물었다.

노인장의 낚시에는 어떤 뜻이 있는지요?”

 

태공이 대답했다.

미끼로 고기를 낚는 것은 보수를 주어 인재를 채용하는 것과 진배없지요. 가는 낚싯줄과 작은 미끼로는 잔챙이밖에 낚을 수 없고, 큰 고기를 잡으려면 줄과 대와 미끼를 모두 그에 맞게 해야 합니다.”

 

이쯤에서 강태공의 담담한 어투로 전하는 치도(治道 다스림의 이치)를 보자.

하늘에는 만물을 운행하는 때가 있고, 땅은 만물을 낳아 기르니 여기에 사람이 어우러지는 것이 ()입니다.

또한 사람을 환난에서 구하고 위급함을 도와주는 것이 덕()입니다.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의()라 할 것입니다.

인과 덕과 의로써 진실한 이()를 이루는 것을 도()라 하니, 천하는 도에게로 귀속하게 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강태공이 후대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때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발의 기백과 용기

 

강태공을 얻은 문왕 희창은 용이 구름을 얻은 듯 비상했다. 태공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실력으로 주나라를 쇄신시켰다. 예와 덕을 숭상하는 나라의 법도를 바로 세웠고, 새로운 병법으로 군사를 훈련시켰다. 그는 병가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문왕이 죽고 태자 무왕이 왕이 되자, 강태공은 사상보, 즉 재상이라는 직책을 맡아 충성스럽게 보필하였다. 결국 주나라와 전쟁을 통해 주왕을 죽이고 멸하게 된다. 비로소 고대 중국의 주나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나라의 시조가 된 강태공은 문왕을 도와 주나라가 은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 정치와 군사 방면 전문가였다.

강태공은 제나라의 왕으로 봉해졌다. 제나라의 제후로서 어진 정치를 펼치다가 139세에 이르러 숨을 거두었다.

 

놀랍다. 동양에서 내려오는 좋은 말들을 모아 놓은 <명심보감, 1305>에는 공자의 가르침보다 강태공의 비중이 더 차지한다. 명심보감 <입교> 편은 절반이 강태공이 무왕을 가르치는 대목이 전편에 걸쳐 산재해 있다. 즉 공자는 성현의 유훈을 정리한 공이 컸다면 강태공은 문왕과 무왕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

뛰어난 강태공은 문왕의 스승이요, 무왕에게는 사상보, 재상이 되었다. 역사를 보더라도 강태공은 과감하게 은나라를 진격했다. 불길한 점괘나 자연재해도 그의 기백 앞에 눈처럼 녹아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대업을 이루었다. 그의 가르침은 후대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자연에서 열매를 얻으려면 필히 기다림이 없으면 안 된다.

낚시 역시 물고기 입질을 생각하면서 기다림 그 자체를 즐긴다.

시대의 리더는 필히 미래 사회를 읽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때로는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사회는 미래의 트렌드를 읽고 준비해 나아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것이 기다림의 미학이다.

 

 

생각 나눔

.................................................................................................

강태공 139세 장수의 비결이 뭘까? 그에게는 장수에 도움이 되는 생활태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다.

 

인문학을 누리는 우리는, 한 주에 하루는, 하루에 한 시간은 나만의 고독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치열하게 를 기다리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가? 때로는 기다림이 필요한데, 어떻게 여유를 갖고 그 때를 준비하고 있는가? 강태공이 후대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때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법인 글로벌 작가협회 이사장
강건문화뉴스 발행인 대표이사
도서출판 강건문화사 대표
시민단체 사실련 사무총장
bth813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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