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다양한 감정! 혼돈스러운 만남 / 박철한

백태현 | 기사입력 2020/08/31 [17:06]

[문학칼럼] 다양한 감정! 혼돈스러운 만남 / 박철한

백태현 | 입력 : 2020/08/31 [17:06]

 

다양한 감정! 혼돈스러운 만남
박철한


▲ 시인 박철한     ©백태현 기자

헤어지면 언젠가 만난다. 했던가? 그래서 '사람의 연은 실을 가위로 자르듯 끊는 것이 아니다.'라 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의 원리가 나에게도 작용한 듯하다. 일 년여 입원 재활치료 효과에 따라 아내의 보행상태가 늦어서 그렇지 비교적 안정적 보행을 함은 물론 혈압 수치도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등 많이 호전되었다. 그래서 운동 삼아 휠체어 사용 없이 보행으로 (계단은 위험함으로 승강기를 이용하였지만.) 지하까지 왕복하였다.

긴 겨울 동안 뾰족한 가지를 높이 들고 하늘을 찌르고 있던 가지마다 새하얗게 핀 살구꽃 잎이 꽃샘추위에 바르르 떨고 있는 사월 말이었다. 중식을 마친 우리는 입원 생화로 지친 몸을 약속이나 한양 아내는 환자용 침대, 그리고 나는 보조침대에서 나란히 몸을 눞혀 잠시 쪽잠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인 병실임으로 다른 보호자와 간병인의 뒤섞인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뜨자,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아내가 안 보인다. 깜짝놀라 허겁지겁 자리를 털고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복도로 나가 승강기를 이용 지하에 내려갔더니, 언제 내려왔는지 아내가 복도의 의자에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복도의 의자가 승강기와 마주 보게 설치되어 있었기에 승강기 문이 열릴 때마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더욱이 치료시간에 가까워지면서 승강기의 왕래가 잦았지만, 이용객의 하차 인원도 많아졌다. 따라서 승강기가 몇 번 문이 열렸는지 자세히 기억할 수 없다.

어느 때인가,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얼굴에 가득 담긴 미소가 지하의 밝게 밝히며 승강기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입속말을 반복하며 다가 오고있다. 분명 칠 년의 긴 기간 폭넓은 이해는 물론 군생활 동안 매주 편지하며 나를 응원하였고, 제대와 동시 자신의 직장까지 그만두고 귀향하여 내 곁을 지키며 따르던 그 였다. 그러나 타인의 시샘과 훼방에 휘말린 깊은 상처를 받았고, 그 상흔으로 내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울며 떠났었다. 그때 오지랖이 좁았던 나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 마음까지 소심하여 그를 보듬지 못하고 외면하였다. 더욱이 나와 마주함까지 완강하게 거부하는 담이 너무 높아 넘을 용기가 없었다. 함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떠났던 그녀가 분명하였다. 그가 아무 연락도 없이 나타났다. 10m가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눈을 떼지 않고 무엇이라 곱씹으며 한 발 한발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와 내 앞에 오뚝 서 있다. 마주함에도 계속되는 그녀의 입속말 그 소리가 너무 작아 들을 수 없었으나, 그 입 모양을 보니 간절한 마음으로 내 이름만 되뇌임 분명하였다. 그 짧은 시간에 그녀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대학교 동기들 모임에서 알았을까? 하는 생각과 감정의 엉킴과 동시 휩싸이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내가 옆에 앉아 있음을 까맣게 잊을 정도의 놀랍고 반가움이다. 그래서 나 자신도 모르게 용수철 튕기듯 자리에서 벌떡 일서며 첫 말이 “맞아, 임~마!, 너......이곳에 어떻게……. 오랜만이다.”갑자기 내가 말더듬이로 변한 듯하였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 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그러자 나의 손을 잡은 그가 나의 심리 테스트 인양 “아직 날 기억하고 있었어?”가 이십오 년 만의 첫 대화였다. 그 후 몇 분간 자신의 생활에 대한 브리핑을 통하여 그녀의 본가가 이곳 옆 동네 ㅇ ㅇ면임을 떠올랐고,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입원하시어 인사하러 왔음의 설명을 듣는 순간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생활함의 안도감 있었으나, 왠지 모를 소원함도 일었다. 마침 나의 호주머니에서 울리는 투지 휴대전화기의 요란한 울림으로 정신을 차리자,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의식하게 되면서 아내에게 어떻게 소개하여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실 나 자신도 중증장애인으로 변한 것, 거기에 아내까지.......이러한 현실을 밝히기 싫었다. 아니 보이기 싫었다. 이러한 마음을 누른 채 우두거니 고민에 싸여있을 때 아내가 “나 화장실 다녀올게”하며 일어나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자리를 피하자, 그 현실에 놀랐던가? 그녀도 “나 점심 먹으려 구내 식당가는 중이야!” 말들을 남긴 채 나만 긴 터널 같은 복도에 나 홀로 서 두 여인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데, 안내 표시를 못 보았던가? 그녀가 막다른 곳으로 진입하기에 이름을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자를 따라가 안내하였더니, 그녀가 “식당 영업시간 끝났 다네.” 말과 동시에 화장실 문이 열리며 아내가 나왔다. 마침 치료 예약시간이 되었고, 그녀는 늦은 점심을 하려고 승강기 쪽으로 되돌아갔는데, 내가 치료실 문을 열려고 한 손에 둥근 시그널 손잡이를 잡고 돌릴 때, 그녀가 “잘 있어~”라는 인사말이 지하의 대기를 흔들며 울림이 내 가슴으로 전이 되어 마구 두들긴다. 그럼에도 아무 대구도 못하고 그냥 보내고, 어느덧 다섯 해가 지났어도 뾰족 바늘로 찔린 듯한 통증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날의 소원한 것 다 잊고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의 기원을 보낸다. 
 
 
사단법인 글로벌 작가협회 이사장
강건문화뉴스 발행인 대표이사
도서출판 강건문화사 대표
시민단체 사실련 사무총장
bth813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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