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작가협회] [대전문학메카] 수필 '불안에 대하여' 소세영 작가

대전문학메카 소세영 작가

천승옥 | 기사입력 2022/07/11 [11:11]

[글로벌 작가협회] [대전문학메카] 수필 '불안에 대하여' 소세영 작가

대전문학메카 소세영 작가

천승옥 | 입력 : 2022/07/11 [11:11]

[수필] 불안에 대하여 / 소세영

 

 

오래전 일이지만, 한 친구와 무속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그 점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하자 친구가 점집을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 점을 보는 집에는 깃발이 꽂혀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처 몰랐는데 우리가 사는 도시에 점집이 참 많았다.

 

 

왜 점이나 역술을 보게되는 것일까? 미래의 상황을 알지 못함, 혹은 그 앎의 정도의 차인 불확실성이다.  미지의 영역에 신이나 초월적 존재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도 있지만, 사회적인 유행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유난히 초월적 존재에 대한 기대나 귀의가 많은 것 같다. 유로존 등 서구의 경우는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종교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오래된 종교인 불교를 비롯하여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기타 등등 종교와 무속, 혹은 점과 역술이라는 것에 의지를 많이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종교와 무속을 다른 것으로 착각하거나 차별화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중적 종교나 무속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앙을 이루는 교리가 정형화되고 대중의 지지를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다는 의견이다. 필자는 가끔 사찰에 들러 기도를 하거나 초월적 존재에 대해 홀로 사색을 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종교나 점을 믿지 않는다. 무신론이거나 다신론에 가깝다.

 

 

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찰해 본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토속신앙과 역술이다. 우리의 토속적인 신앙은 토템과 무다. 무는 무당으로 일컬어지는데, 토템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토템이 바위나 나무 등을 신격화하는 것이라면, 무는 초월적 존재의 정신과 육체에의 인입으로 나타난다. 애기동자니 무슨 장군신이니 하는 초월적 존재가 몸에 인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술이 있다. 역술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사주팔자라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년월일시를 기둥으로 하여 음양오행으로 푸는 것인데, 사물의 성향을 음과 양, 그리고 다섯가지 성질로 구별해놓고 그 성과 기질을 적용하여 풀어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역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역의 점을 의미한다. 동양의 사서삼경 중의 삼경의 하나로 경전, 즉, 종교의 지위에 버금가는 경으로 인식이 되었다. 그 내용 또한 심오하고 신묘하여 오랜 세월 가다듬은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 주역의 점괘는 64괘로 나뉘어져 있는데, 점을 쳐서 나온 괘의 괘사를 적용하는 것이 역점이다. 그리고, 사주팔자를 보거나 역점을 치는 것은 그 분석 가능한 사상의 영역에서 풀어내는 것이므로 확률론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한 종교와 점의 영역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 미래에 대한 방향이나 답을 얻고자 함이다. 대중적 종교에 대한 신앙의 경우도 당장 원하는 것을 들어 달라는 경우도 있지만, 신앙으로 인하여 생활 태도와 그로 인한 미래의 기약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 견지에서는 어떤 신앙이든 그 믿음의 과정과 목적은 기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인류의 과학기술의 발달은 과거에는 신비와 종교의 영역이었던 곳이 지식의 영역으로 치환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도 빨라져 최근의 AI에서 보듯 연산능력은 물론, 추론과 상상능력에서도 컴퓨터가 인간을 앞서게 될 날은 그리멀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궁구하며 해답을 얻지 못한 종교의 영역의 규명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기계가 먼저일 수 있다는 추론은 잘못된 주장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어떤 사회가 종교나 점에 빠져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예측이나 상상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영역에 대한 현재의 대비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비율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의 증거는 또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복권이다. 복권의 경우는 종교와 다른 것이 가시적이고 명확한 결과물은, 예측가능한 확륙이 존재한다. 다만 그 확률값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 희박한 확률의 화살을 맞게 해달라고 또 점을 치거나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불안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그 복권을 즐겨 사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른데, 바로 위험을 대하는 대하는 태도다. 당첨확률을 아주 작지만, 당첨이 되면 일확천금을 쥐는 복권은 그 사는 사람들의 위험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이 증가할수록 그 성향의 사람들을 더 많게 만든다는 것이다.

 

 

불안은 또, 직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소위 말하는 공무원과 같은 일정한 수입이 있는 경우는 복권을 구매하는 빈도가 사업을 하는 자보다는 낮다할 수 있다. 고정수입은 예측가능한 수입내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소득 등 불규칙한 소득의 경우는 그러한 합리적인 계획이 불가능하다. 들쑥 날쑥한 수입으로 장기의 소비생활로 형평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소득이 일정한 소위 안정적인 직업이라더라도 점이나 무속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자신의 의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부에서의 인사변동에 그 점과 무속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수 십 년 경력의 신통방통한 유명 역술인을 만났는데, 우리 사회의 상당수의 판검사도 고객이라고 귀뜸을 해준 일이 있다.

 

 

필자는 가끔 대표적인 복권인 로또의 판매량을 보곤 한다. 그 판매량을 보면, 서민들의 삶이나 경기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불안이 증가할수록 그 복권의 판매량이 증가함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최근 covic19로 인한 경기침체기에 그 판매액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종교나 점, 그리고 복권이 전혀 다른 영역인 것 같지만, 그 공통점이 미래에 놓인 불확실성에 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월적인 존재에 해법을 구하든 의탁을 하거나 그것을 확장해 본다면, 그 사회의 불안의 이면을 대변해준다면, 그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을까? 그리고 그 해법은 무엇일까?

 

 

                            <소세영 시인  약력> 

▲     ©천승옥

 

 

글/소세영 작가 

[강건문화뉴스  =  천승옥 기자]

cso66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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