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진 시황제의 경제마인드(2)

세계최초 경제적 황제

정병태 교수 | 기사입력 2021/03/24 [13:29]

탁월한 진 시황제의 경제마인드(2)

세계최초 경제적 황제

정병태 교수 | 입력 : 2021/03/24 [13:29]

 [강건문화뉴스=정병태 수석기자]

▲ 진 시황제(始皇帝)  © 정병태 수석기자



시황제(始皇帝, BC 259-210)전국 칠웅 진나라의 제31대 왕이자 6개의 나라를 통일한 1대 황제로, 세계 최초의 황제다. 의 이름은 자신이 이전 왕들과는 다르다 하여 스스로 황제皇帝라 일컬었다. 그는 만리장성을 완성하였고 중국 역사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현대에는 시황제의 진취성과 개척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진 시황제는 당시 시대를 초월하는 탁월한 경제마인드를 갖고 새로운 경제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하루에 많은 업무량을 처리하지 않고는 결코 휴식을 취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윤이 많이 남는 소금과 철은 정부만이 팔 수 있는 전매제를 실시했다. 전매제로 나라는 엄청난 이윤을 남겼다. 그리고 무수한 건축물들이 조성되었다. 한 예로 폭114m의 아방궁이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 인구는 1000만 명이었다. 그 가운데 200만 명을 노역에 징병했다.

이렇다보니 진 시황제 때 중국의 산업과 경제가 가장 크게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폭군으로 알려진 진 시황제는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중국의 산업과 경제 발달에 초석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중국을 통일한 뒤에 여러 제도를 정비했는데 대표적으로 문자통일을 들 수 있다. 진 시황제는 말은 소리가 다르고, 문자는 모양이 다른문자통일을 먼저 추진하였다. 승상 이사는 통일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통일된 문자를 가져야 한다고 보고, 당시 주변 나라의 문자를 참조하여 소전체라는 표준문자를 만들었다. 결국 중국 전역이 하나의 문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진 시황제의 문자 통일_소전체   © 정병태 수석기자


화폐 경제학

 

역사에서 화폐는 통치수단으로 국가가 관리했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66-826)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곡물과 천은 농민이 생산한다. 천연자원은 공장(工匠)이 가공한다. 부와 상품은 상인이 유통시킨다. 그리고 화폐는 통치자가 관리한다.

 

동양에서 화폐가 사용된 기원은 대략 춘추전국시대부터 화폐를 사용해 경제가 발달했다. 그리고 화폐경제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관자(管子)>이다. 관자』「35편 치미(侈靡)에 보면 힘센 사람이 주옥을 가지고 있고, 머리 좋은 사람이 주옥을 조종할 수 있어서, 주옥의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하여 귀한 것을 천하게 만들고 천한 것을 귀하게 만든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가 화폐를 통제해야 백성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78편 규탁(規度)에서도 군주는 화폐 유통을 정책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전하다. 또 적정 화폐량을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백성의 삶을 향상 시킬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 화폐가 부족하면 Deflation이 발생하고 화폐가 과도하게 유통되면 Inflation이 발생하기 때문이다.(관자76편 산지수(山至數))

화폐 경제학을 논할 때 중국 역사에서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진 시황제이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화폐들을 전부 원형방공형 환폐인 반량전으로 통일시켰다.

 

▲ 진나라에서 사용되던 화폐원형방공형 환폐 - 반량전  © 정병태 수석기자


천하를 통일한 후 진 시황제는 광대한 영토를 어떤 방식으로 통치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 모든 화폐를 폐지하고 원형방공의 반량전(둥글며 한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는 엽전 모양)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화폐 공급과 유통의 문제로 화폐가치가 제각각 평가되어 진나라 경제는 곧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원래 한문 차()는 위에서 수레를 본 모습을 따서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인류 문명사에서 문자 다음으로 가장 큰 발명품은 바퀴라고 한다. 수레는 고대 중국에서 은나라 때(BC 1300) 이미 군사적인 목적으로 수레를 사용했다. 고대의 길은 수레가 지나간 자리가 움푹 폐여, 이 자국을 따라 마차가 지나갔다. 나라마다 이 바퀴의 폭이 달라 다른 나라에 가면 마차의 바퀴를 갈아야 했다.

 

진 시황제는 각 나라들의 수레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바퀴의 폭을 달리하였다. 바퀴의 차이가 전국적인 교통의 흐름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바퀴의 폭을 통일하고, 그에 맞춘 치도(馳道)라는 도로를 전국에 건설한다.

진 시황제는 도로 건설을 통해 교통의 발전과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 진 시황제의 병마용갱 전차  © 정병태 수석기자


진 시황제가 이룬 업적들을 보면 한 가지 분명한 법이 있다. 바로 표준화이다. 이처럼 통일된 표준화는 주류가 되어 선점하고 다스리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나름의 분명한 표준화된 기준과 규격()이 필요하다. 그 표준화된 기준으로 준비하고 행동한다면 큰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삶이라할지라도 올곧이 걷게 해준다.

 

또한 진 시황제가 통일하는데 무엇이 일등공신을 하였을까?

이는 철제 병기 덕분이었다. 진나라의 힘은 철제 병기 쇠뇌는 당시의 첨단무기였다. 그 무렵 검과 창이 주 무기였다. 당시 쇠뇌를 당할 신무기(활을 개량한 무기)가 없었다.

 

▲ 진 시황제 병마용 갱에서 당시 쓰이던 석궁(쇠뇌)  © 정병태 수석기자



시황제(始皇帝)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쇠뇌와 석궁의 대량생산이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승상인 이사(李斯)는 생산된 무기에 대한 최고위 감독자로 무기산업의 혁신에 중점을 뒀다. 결국 10년 만에 진()의 통일사업을 완수한다.

      

앞으로 미래 경제를 읽고는 진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성장을 추구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자신부터 혁신해야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고 세상이 바꾸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실로 성장을 원한다면 업데이트가 아닌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업데이트로는 성장할 수 없다. 아프고 쓰리지만 고난과 실패에 맞서는 업글:인간이 되어야 한다.

 

[강건문화뉴스=정병태 수석기자]

jbt69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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